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문단 편집) === '코끼리 발' 문제 === || [[파일:1934_8562ae5e286544710b2e7ebe9858833b.jpg|width=100%]] || || '''방사성 연료가 녹아서 2m의 차폐벽을 뚫고 나와 쌓인 모습.'''[br]어마어마한 양의 방사선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모양 때문에 ''''코끼리 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고 10년 후인 1996년에 찍힌 사진으로, 이때는 [[반감기]]로 인해 방사선이 줄어들어 사진을 찍는 게 가능했다.] || ||[[파일:Chernobyl_Elephant's_Foot.jpg|width=100%]]|| || 똑같이 1996년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하로 내려가서 찍은 사진.[* 사진 속의 인물은 아르투르 코르네예프(Артур Корнеев, Artur Korneyev)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핵 과학자로, 생존해 있으나 코끼리 발을 촬영한 후 건강이 크게 나빠져서 병원 신세라고 한다.][* 빛 줄기는 카메라 셔터 속도에 의한 것이지만 코르네예프의 잔상은 방사능 때문에 필름이 손상되어 생긴 것이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코끼리 발이 얼마나 많은 방사선을 내뿜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파일:chernobyl_elephant's_foot_1990.jpg|width=100%]]|| || 사고 발생 불과 '''4년 후인 1990년'''에 찍힌 코끼리 발의 사진. 위 두 사진에 비해서 잘 쓰이지 않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인부 1명이 모서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다가 뛰어가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고 발생으로부터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필름이 심하게 손상되었고 사진 화질도 좋지 않다. '''훗날 이 사진을 찍은 인부는 방사능 피폭으로 목숨을 잃었다. 체르노빌 사고 관련 자료로 잘 사용되지도 않는 사진 1장에 사람 1명의 목숨이 날아간 것이다.''' 사고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코끼리 발의 방사능 수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부분.] || '''[[https://youtu.be/sBR6j0FT2wM|2001년에 실제로 내려가서 코끼리 발을 찍은 영상. 영상 내내 가이거 계수기가 계속 삐삐삐삐삐 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15년이 지나서 사고 당시에는 시간당 '''10,000뢴트겐, 100시버트'''를 뿜어내던 코끼리 발이 많이 진정돼서 시간당 800 뢴트겐으로 줄었다. 물론 800 뢴트겐도 '''8시버트'''의 매우 높은 수치다.] 한편 위쪽을 덮는 것뿐만 아니라 아래 쪽을 차단하는 것도 문제였다. [[노심용융|용융]]된 핵연료 마그마들이 [[차이나 신드롬|점점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아래쪽으로 핵연료가 누출될 경우 대수층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러면 서부 [[러시아]]의 전체 식수원인 [[드니프로강|드네프르강]], 그리고 그 드네프르강과 연결된 [[흑해]]가 오염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방사선이 그나마 약한 지하 쪽으로 땅굴을 파들어간 다음 발전소 아래에 액체 질소를 사용한 냉각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소련]] 전역에서 약 400여 명의 [[광부]]들이 소집되었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열기 안에서 광부들은 1달 만에 작업을 완료했는데 통상의 3분의 1로 단축된 것이었다. 이때 지반이 매우 좁고 더워서 방호복을 입을 수 없었고 토양도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였기 때문에 광부들도 다량의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이로 인해 최소 100명 이상의 광부가 40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지하는 방사선 수치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터널 입구가 발전소 근처에 있었다. 이렇게 많은 희생을 한 끝에 발전소 아래에 공간을 마련했더니 정작 냉각기 완성에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다. 결국 '''액체 질소 냉각기는 무산되었고 그 자리를 콘크리트로''' 채웠다. 그러나 광부들의 이 작업은 결과적으로 '''불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지휘부는 녹아내린 노심이 땅을 뚫고 내려가 지하수까지 도달해 흑해에서 [[키이우|키예프]]까지의 모든 식수원이 오염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광부들을 동원해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지하의 불순물이 계속해서 노심에 섞여 핵분열을 중단시켰고 덕분에 노심이 지하수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지휘부도 최악의 결과가 일어날 확률이 약 50%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50%의 확률에만 기대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작업을 강행했다. 때문에 이를 보고 광부들의 희생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결과론적인 해석임에도 당시에는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었다는 씁쓸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